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 분쟁을 치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층간소음 문제를 개인의 부도덕 내지 부주의로 인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민의 문제가 아닌 잘못된 제도와 그것을 만든 국토부의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며칠 전 유튜브 비디어머그 채널에서 SBS 김범주 기자가 층간소음 문제를 다뤘습니다. 뉴스 치고는 매우 긴 13분짜리 뉴스였습니다. 뉴스를 보고, 조금 다른 각도로 층간소음 문제를 바라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뉴스에서 지적한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꼽씹어보겠습니다.
층간소음 문제는 사람들이 만든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층간소음 문제는 개인간의 분쟁으로 보고 '층간소음 관리위원회',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치해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도록 해왔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층간소음을 검색하면 주어가 "공동주택의 입주자 또는 사용자"입니다. 사람이 만든 소음이 다른 입주자 또는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거나 협조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층간소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시각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비디오머그의 뉴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 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들에서는 층간소음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80년대 후반에 일산이나 분당 등지에 신도시를 만들면서 층간소음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아파트를 빨리 많이 지어야 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부실한 자재와 날림 공사가 판을 쳤다는 것이죠. 나아 좀 있으신 분들은 바닷모래로 집을 짓는다고 우려하던 뉴스가 기억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그 바닷모래도 없어서 못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층간소음 문제는 과거에 없던 일이 시대가 바뀌면서 생긴 것입니다. 70~80년대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얌전했는데, 2000년대 이후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더 시민의식이 떨어져 방방 뛰어다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예전보다 더 많아진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 더 뛰어노는 것도 아닐 겁니다. 논리적으로 아파트 품질이 나빠졌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점점 좋아져야 하는 아파트 품질이 거꾸로 갔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층간소음 관리에 손 놓았던 관료
층간소음에 대한 규정은 91년대 초반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공동주택의 바닥은 각 층간의 바닥충격음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구조로 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국토부의 주택건설기준에 규정돼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를 선언적이었다고 언급합니다. 구체적인 시행방안이나 처벌규정이 없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러다 2003년에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위원회가 층간소음에 대해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문제는 이때 시작합니다. 국토부는 환경부의 결정을 보고 규정을 바꿉니다. 2004년에 주택건설기준의 선언적 규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합니다. 경량충격음과 중량충격음에 대해 각각 53, 50데시벨 이하로 관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규정이 들어갑니다. 국토부(당시 건교부)가 표준바닥구조 및 차단성능등급을 각각 정하여 고시할 수 있게 합니다. 건설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규정이었다고 뉴스에서 설명합니다. 국토부가 이런저런 바닥구조 기준을 만들고 기준에 맞게 아파트를 지으면 층간소음문제가 없는 아파트로 보겠다는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들이 국토부의 기준에 맞게 지어진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2019년 감사원은 국토부의 층간소음 제도에 대해 적나라하게 평가한 감사보고서를 내놓습니다. 참... 뉴스만 보고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당시 문서를 찾아봤습니다. 보고서 끝 부분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국토부장관은) 바닥충격음 차단구조 사전인정제도의 문제점을 알고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보고서 -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 -, 2019.4.)
국토부의 바닥구조 기준이 문제가 있고,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고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기가 찰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규정을 만들어 놓고 입주자들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정말 기가 차네요.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요. 여태 층간소음으로 골치 썩는 사람들은,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부모들은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제도가 개정되고 감사보고서가 나오기까지 15년이 걸렸습니다. 15년이면 이 규정을 다룬 담당 공무원이 10명은 넘을 거 같습니다. 담당자 말고 국토부의 소관 부서장과 부원들을 포함하면 수십명은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실무적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산하기관과 유관기관 인원을 따지면 몇 백명은 될 거 같습니다.(숫자는 제 추측입니다.) 적어도 이 사람들은 제도의 헛점을 알고 있었을 거 같습니다. 참... 이 사람들이 층간소음 문제를 알면서도 방치한 거 아닌가요?
층간소음 해결할 기술은 이미 나왔지만...
김범주 기자는 이미 10년 전에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나왔다는 보도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술은 상용화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낮은 수준의 기준만 갖춰도 층간소음문제에서 건설사의 책임이 없게 해줬는데, 뭐 하러 실질적인 해결을 해야 하냐는 게 건설사들의 인식이라고 지적합니다. 제가 사장이라도 층간소음 해결 기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그저 정부 관료들이 층간소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게 다른 곳으로 관심을 분산시켰을 거 같습니다. 참...
뉴스의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서 이번 포스팅에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유튜브 비디오머그 채널에서 "국토부가 20년 동안 거짓말했다...우리만 몰랐던 '층간소음'의 진실"이란 제목을 검색해서 보시면 김범주 기자의 더 깔끔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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