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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의 진실 - 임팩트볼 49데시벨로 문제를 덮으려는 사람들

by 소형가습기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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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문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층간소음에 대한 정책을 잘못 설계한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층간소음에 대한 나쁜 정책을 소개해 드립니다. 조금 길고 어려운 내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층간소음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번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층간소음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과 국토부의 제도 개악

감사원, 2019년 4월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 보고서
"국토부는 사전인정제도의 문제점을 보고받거나 조사하고도 후속조치 미이행"
"인정제도가 인정, 시공, 사후관리 등 전 단계에서 문제점이 확인되어 정책 전환 필요"

감사원의 지적은 국토부가 층간소음 관련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는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감사원이지만 한 부처의 잘못된 정책을 다 뜯어고치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됐길래 이랬을까요. 만약 감사원이 무리한 지적을 했다면 국토부는 나름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반발을 했겠지만 국토부는 감사원의 지적을 일단 수용합니다.

 

국토교통부, 2020년 6월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성능 사후 확인제도 도입방안' 
"사전, 사후 측정에 따른 혼선 및 사후 확인제도 도입시 유용성 저하 등을 고려하여 인정제도는 사후 확인제도 시행에 맞춰 폐지"

말이 헷갈릴 수 있으니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기존의 '사전인정'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없애고 '사후에 확인하는' 제도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완공 직후에 층간소음 차단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한 것입니다. 진짜 층간소음을 해결하고 싶으면 사전, 사후에 모두 검사하는 게 제대로 된 방법 아닐까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국토교통부, 2020년 6월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성능 사후 확인제도 도입방안' 
"ISO 국제기준을 고려하여 단지 세대 수의 5% 측정. 다만, 초기에는 2%로 시작하되 향후 점진적 상향 추진"
"분양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제공 가능(한 바닥충격음 연관 지표를 발굴)"

전체 단지의 5%만 샘플로 측정하고, 제도 초기에는 2%만 측정한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100세대 단지면 5집만 측정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샘플 조사한 결과를 입주민에게'만' 공개를 하겠다고 합니다. 최초 입주자 다음에 그 집을 산 사람은 측정치를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분양받은 사람이 다음 매수자에게 측정치를 굳이 알려주려고 할까요? 왜 입주민에게만 공개해야 할까요? 만약 측정값이 나쁘게 나온다면 집주인들은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까요? 아니면 집값 떨어질까 걱정하며 빨리 팔아버리고 다른 집으로 갈까요? 입주할 때의 집주인만 알고 그 이후에는 이게 공개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굴 위한 측정이고 결과공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정책의 취지가 무엇이고 누굴 위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개악의 몸통은 이제부터 - 임팩트볼 및 49데시벨의 속셈은?

국토교통부, 2020년 6월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성능 사후 확인제도 도입방안' 
"바닥충격음 측정 방법 개선. 체감 소음 개선에 초점을 두고 경량, 중량충격음 평가기준을 ISO 국제기준에 맞추어 개선"

국토부는 측정방법을 임팩트볼로 변경한다고 계획합니다. 실생활에서의 소음과 유사한 조건이라는 근거를 듭니다. 기존에는 어떤 방법으로 측정했는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으실 겁니다. 기존에는 뱅머신이란 이름의 7.2kg의 타이어를 기계로 내리 치는 방식으로 측정했습니다. 국토부는 이 방식을 버리고 새로 임팩트볼 방식을 꺼냈습니다. 배구공만 한 크기의 2.5kg짜리 고무공을 성인 배꼽정도의 높이(1m)에서 가만히 떨어뜨려 측정하는 게 임팩트볼 방식입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모르겠는데,  7kg과 2kg 중 어떤 물체로 측정하는 게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목적에 부합하는 걸까요? 이것도 여러분이 판단해 보십시오.

 

국토부는 ISO 기준에 맞추겠다고 하는데, 임팩트볼로 중략충격음을 측정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습니다. 국제기준이 국제기준이 아닌 한일기준인 셈입니다. 그나마 일본은 권장사항인데, 우리나라만 굳이 의무화하겠다고 나선겁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국토부가 독자적으로 만든 정책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국토부가 내다버린 뱅머신 방식이 처음 버려진 게 아닙니다. 국토부는 2012년 "아파트 바닥충격음 관련 공청회 개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냅니다. 중량충격음 측정 시 뱅머신을 사용하고 있는데 충격력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임팩트볼을 표준충격원으로 추가한다는 내용이 담깁니다. 가벼운 물체로 측정하니 충격음 기준도 뱅머신의 50 데시벨보다 3 데시벨 낮추었습니다. 2014년부터 시행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1년 만인 2015년 8월 보도자료를 내고 "바닥 충격음 측정방법을 뱅머신 방식으로 일원화"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냅니다. 감사원이 이 과정을 들여다보니 국토부가 건설사의 말만 듣고 제도를 바꿨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 데시벨 낮추는 과정에서 건설사의 의견만 수렴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입니다. 건설기술연구원 등이 측정한 것을 근거로 했다면 5 데시벨 이상을 낮췄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담겼습니다. 국토부는 정책을 기업의 말만 듣고 고쳤다는 겁니다. 이게 누구를 위한 층간소음 대책이었을까요? 

 

건설사와 국토부는 임팩트볼을 왜 선호했을까요? 감사원 보고서에 이렇게 나옵니다. 뱅머신으로 측정하면 기준미달을 뜻하는 등급 외 판정을 받는 게 국내 아파트의 49%인데, 임팩트볼로 하니 5%만 기준 미달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국내 아파트의 절반이 층간소음 기준에 미달하는 현실을, 임팩트볼로 측정해 95%가 합격하는 기가 막힌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국토부가 기준 하나 바꿔서 국내 아파트에는 층간소음 문제가 없어지게 만듭니다. 

 

설명이 좀 길었습니다. 다시 2020년과 2022년의 층간소음 대책으로 돌아가보시죠. 뱅머신은 폐지됐습니다. 임팩트볼로만 사후에 점검하는 게 국토부의 최신 층간소음 대책입니다. 헷갈리지 말아야 할 부분은 임팩트볼 방식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소음기준을 적절히 정해 뱅머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과연 그렇게 했을까요?

 

국토교통부, 2020년 6월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성능 사후 확인제도 도입방안' 
"뱅머신·임팩트볼 두 충격원 간 상관성이 낮아 보정치 적용 등 상호 환산․비교가 어렵고, 임팩트볼의 평가기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임팩트볼의 성능 값은 단일 값으로만 평가(하겠다)"

국토부는 2012년에 임팩트볼 소음 기준을 47데시벨로 했다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감사원에 지적받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는 49데시벨로 정했습니다. 규제를 강화한게 아니라 완화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위에 나온 설명입니다. 이제 와서 뱅머신과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다면서, 임팩트볼만을 위한 독자적인 소음 기준을 정하겠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지만 47 데시벨로 하면 국내 아파트의 95%는 층간소음 문제가 없는 아파트가 됩니다. 국토부는 2020년에 이를 49 데시벨로 상향합니다. 99% 아니 100% 가까운 아파트가 층간소음이 없는 것처럼 정책을 설계한 것이죠. 이게 말이 되나요? 우리나라 아파트의 대부분이 층간소음 문제가 없는 게 맞나요?

 

감사원이 잘못됐다고 한 내용을 일개 부처에서 제 입맛대로 해석하고 지적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가 차다는 이야기말고는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번 포스팅 내용은 저 혼자 알아낸 것은 아니고, SBS의 김범주 기자가 유튜브 채널 비디오머그에서 보도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그 기자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합니다) 뉴스를 보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해당 자료를 직접 찾아서 제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정말 기가 찬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국토부는 건설사, 특히 1군 건설사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만들고 운영한다는 의심과 의혹을 받아왔습니다. 1~2년 된 이야기도 하니고 수십 년간 굳어진 이미지입니다. 층간소음 관련 정책도 그런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사례로 남을 거 같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그들의 행태를 큰 소리로 지적해 주길 바랍니다. 

 

<참고로, 이 보도 전에도 관련 보도가 있었습니다. 아래 링크는 1편, 이번 포스팅은 2편 격입니다.>

 

 

층간소음 문제, 개인의 잘못 아닌 잘못된 제도가 일으킨 후과인가?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 분쟁을 치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층간소음 문제를 개인의 부도덕 내지 부주의로 인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민의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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